토리 칼럼

[일본여행] 아야네 보러 가즈아!! ~III. 극장劇場~

우에노 오쿠라 극장의 옛 모습(1987년).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왼쪽 건너편에 스타무비 극장이 있었다. 2010년에 오쿠라 극장은 리뉴얼을 하면서 스타무비 자리로 이전했다.

6. 핑크영화의 성지(聖地)
 
스즈카와 아야네를 보러 일본에 간 거였지만 그저 은퇴식에서 한 번만 보면 족할 일이었다. 나머지 일정 동안에는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은퇴를 앞둔 인기 AV배우라서 그런지 가는 곳곳마다 아야네를 만날 기회가 있었고, 졸지에 세 번이나 보게 되었다.

첫 번째 만남은 핑크영화의 성지 우에노 오쿠라 극장(上野オークラ劇場)에서였다. 1월 27일 오후 1시 38분부터 스즈카와 아야네 주연의 핑크영화 『변태가족: 푸른 바다에 안겨(変態家族 碧い海に抱かれて)』 상영이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출연진들이 관객과의 대화 및 사인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오쿠라 극장은 일본 최초로 핑크영화를 제작한 오쿠라 영화사의 직영 극장이다. 그 존재 자체가 핑크영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굳이 사인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번 꼭 가야지”라고 맘 먹고 있었는데, 그 언젠가가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
 
 

최초의 핑크영화 『육체의 시장』(1962)

7. 핑크영화란 무엇인가?
 
‘핑크영화’란 기본적으로 에로영화이자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무조건 야한 장면만 있으면 ‘핑크’라고 오해를 사곤 하지만, 메이저 영화 시스템에 묶여 있다면 ‘핑크’가 아니다. 소규모 핑크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고 배급되어야만 핑크영화라고 불릴 자격이 주어진다. 할리우드의 B급 영화와 거의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핑크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오쿠라 극장 같은 전용관에서 마치 AV를 연상케 하는 적나라한 타이틀로 상영된다. 그러다가 관객이나 평론가들의 반응이 괜찮다 싶으면 세련된 이름으로 일반 극장에 다시 개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토 히사야스 감독의 『로리타 바이브레이터 고문』은 『비밀의 화원』이라는 제목으로 일반 극장에서 다시 개봉했다.

핑크 전용관은 70년대 동시상영관의 관행이 남아서, 일반 극장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 하나의 영화에 하나의 티켓을 끊는 게 아니다. 자유입장권처럼 티켓 한 장만 끊으면 몇 편의 영화를 보든지 상관이 없다. 영화 중간에도 로비와 좌석을 왔다갔다 할 수도 있다. 자유석이라 빈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으면 된다. 다만, 극장 밖으로 나가면 끝이다.
 
 

노란 별표로 표시한 곳이 우에노 오쿠라 극장이다.

‘츠키모토 아이’가 알려주는, 오쿠라 극장으로 가는 길 (03:08~ )

8. 극장 전(前)
8-1. 티켓을 끊다.
 
우에노에 도착한 건 1월 27일 낮 12시 반이었고, 상영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혹시나 자리가 매진이라도 될까 하는 ‘기우’에 부랴부랴 극장으로 달려갔다. 극장은 우에노 공원 남쪽 끝에서 시노바즈 연못 쪽으로 빠지는 골목에 있었다. 입구부터 ‘스즈카와 아야네’와 ‘츠키모토 아이’의 사진이 잔뜩 붙여져 있었기 때문에, 누가봐도 오쿠라 극장이었다.

츠키모토 아이 사진이 있는 건, 그녀가 오쿠라 극장 제3대 마스코트 걸이기 때문이었다. 초대 마스코트는 ‘호시노 유즈(星野ゆず)’였고, 2대는 ‘아사쿠라 코토미(朝倉ことみ)’였다. 작년 4월에 코토미가 은퇴하면서 새로 뽑힌 마스코트가 츠키모토 아이였다.

극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다. 당시엔 일단 티켓부터 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표(1,600엔)부터 끊어버리고는, 한 손에 질질 끌고다녔던 캐리어를 코인락커에 보관하려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중에 다시 극장으로 돌아와서야, 나갔다 들어오려면 재입장권(400엔)을 추가 결제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만약에 코인락커를 먼저 들리고 극장에 들어갔다면 400엔을 아낄 수 있었는데, 실수였다.
 
 

오쿠라 극장 앞. 빨간 간판이 걸려 있는 1층으로 들어가야 신작 영화들을 볼 수 있다. 오른쪽에 파란색 간판이 걸린 곳은 ‘우에노 특선 극장’이라고 500엔에 옛날 핑크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상영관이다.

스즈카와 아야네의 마네킹. 자세히 보면 얼굴을 그때그때 바꿀 수 있게 되어 있다.

오쿠라 극장의 마스코트 걸 츠키모토 아이.

츠키모토 아이의 팬더곰 인형.

8-2. 비둘기 똥은 원래 갈색이다.
 
여하튼 티켓을 끊자마자 코인락커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미리 역 근처 코인락커 위치를 검색해두었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골목골목마다 락커 천지였다. 극장 앞에도 하나 있긴 했는데 남는 자리가 없어서,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락커를 썼다. 작은 건 200엔, 중간 건 300엔, 그리고 큰 건 500엔이었고, 중간 크기로 골라 짐을 집어넣었다.

짐 정리를 하면서 책 한 권만 꺼내려고 했던 게 화근이었다. 이게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어랏, 떨어졌네”라며 책을 주으니, 뒷표지에 뭔가 묽은 덩어리들이 흔건하게 묻어 있었다. 비둘기 똥이었다. 젠장, 그것도 갈색 변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몇 장을 뜯어내야 했다.

아… 이 찝찝함. 그 뒤엔 의문이 남았다. 왜 갈색 똥이었을까? 비둘기는 원래 흰 똥을 싸지 않나? 구글 신은 답을 주었다. 비둘기 똥이 하얀 건 오줌의 요산성분이 함께 섞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줌이 섞이지 않은 비둘기 똥은 갈색을 띄는 게 맞다. 그러므로 내 책에 묻은 건 100% 순수 비둘기 똥이다. 참 더럽다.
 
 

우에노 공원의 저주받은 코인락커. (꼭 거기다 똥을 싸야만 속이 후련했냐! 18새끼들아!)

8-3. 할아버지들 옆에서 카레빵을 먹다.
 
극장으로 다시 들어와 재입장을 한 나는 주변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우선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핑크영화라는 게 6~70년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옛 것이기도 하고, 노년층에겐 할인이 적용되니깐 싼 맛에 오기도 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들은 로비에서 수다를 떨거나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카운터엔 컵라면이나 간식거리, 또는 술을 팔고 있었다. 로비에선 술도 마실 수 있고 흡연도 가능하다. 나는 할아버지들을 따라 카레빵을 사 먹었다. 첫 입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빵이 촉감으로 느껴졌다. 두 번째 입에서는 강렬한 카레향이 코를 쏘았다. 그 뒤로 진한 아마카라(달고 매운 맛)가 느껴졌다. 속에 있는 카레가 달짝지근하면서도 굉장히 자극적인 게 낯설었다. 카레빵이 이런 것인 줄은 몰랐다.
 
 

카레빵은 꽤나 낯선 맛이었다. 난 불호는 아니지만 자주 사먹진 않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얘도 갈색이잖아?

8-4. 카운터에서 팜플렛 하나를 사다.
 
카운터엔 관련 굿즈도 팔았는데 별 건 없었다. 2018년 캘린더가 그나마 잘 팔리는 거였다. 나는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핑크대상 시상식 소개 책자 중 한 권을 샀다(700엔). 읽을려고 산 건 아니었다. 겉표지가 ‘미즈나 레이’인데, “저건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지?”라는 궁금증을 못 이겨서 샀다. 확인해보니, 『욕망에 미친 애수들(欲望に狂った愛獣たち)』의 한 장면이었다.

카운터 옆에는 영화 관련 팜플렛만 있는 게 아니라, 풍속 정보지나 광고지가 굉장히 많았다. AV 샵이나 성인용품점에서도 못 보던 것들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프리미엄 극장으로 가는 입구였다. 익히 미노루 님께 들어서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일명 금녀(禁女)의 구역… 게이와 오카마들의 핫 플레이스다.

극장 내부를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짙은 흑발에 단정한 차림의 여자가 로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면서 지나가는데, ‘츠키모토 아이’였다. 실물을 직접 보니 귀여운 아가씨 느낌 절반에 당당한 커리어 우먼 느낌 절반이었다. 인간관계 좋고 생활력 강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미즈나 레이가 표지로 나온 제27회 핑크대상 팜플렛

도쿄 도내의 풍속 정보를 담은 팜플렛들. 카토 츠바키가 나온 건 풍속지가 아니라 케이블 방송 광고다.

츠키모토 아이는 상당히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 하는 친한파 배우다.

8-5. 드디어 좌석에 앉다.
 
어느덧 『변태가족』이 상영될 시간이 되어 나는 스크린 앞으로 향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핑크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좌석은 비좁았지만 불편하진 않았고, 시네마테크 소극장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과 스즈카와 아야네를 본 후기, 그리고 금녀의 구역 ‘오쿠라 극장 2층’에 대해 자세하게 썰을 풀도록 하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일본여행] 아야네 보러 가즈아!! ~III. 극장劇場~” 댓글 : 2

  1. 상당히 색다른 여행기라 너무 재밌네요 ㅠㅠ 불토리님 어서 길게 많이 업데이트를!!

    1. 언능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겟네요 ㅎㅎ
      어여…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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